최근 회의를 하다가 별다른 근거 없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강한 확신을 가질 때면 보통 그러한 느낌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말을 했다.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
‘느낌’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이 과연 옳은지, 자신의 느낌이 보통 옳다고 했는데 이러한 판단에 대해서는 근거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수정하지 않은 것뿐인 것은 아닌지 등 아리송한 기분이 되었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인간은 ‘확증편향’을 잘 하는 동물이다. 근거에 따라 믿음을 수정하기보다 믿음에 따라 근거를 선택적으로 골라 잡는 동물이다. 예컨대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을 못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수학을 못 하는 여성들을 볼 때면 ‘역시 여자는 수학을 못해’라며 일반화 회로를 돌리지만 수학을 못 하는 남성들을 보면 그냥 그 사람이 수학을 못 하는 것이라고 개인의 문제로 해석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답을 알고 나서야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후견지명’에도 능한 동물이다. 여기에 각종 자기 고양, 내집단 편향 등으로 인해서 같은 일도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강도가 그 믿음의 사실 여부를 보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정말 그렇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을수록 실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 워털루대의 심리학자 셰인 리트렐(Shane Littrell) 팀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잘 모르면서 아는 척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는 자신감은 높으면서 실제로는 가짜 뉴스에 더 쉽게 속아 넘어 간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엉터리 주장을 진지하게 펴는 사람들은 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거창한 말들에 잘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삶의 본질적인 가치는 홍익인간의 정신에 의해 하늘을 가로지르는 난파선이다’ 같이 있어 보이는 표현을 잔뜩 넣었지만 실은 아무 말이나 늘어 놓았을 뿐인 말들에 더 쉽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소위 헛소리를 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헛소리에 더 많이 빠져들고 잘못된 믿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발견들이 가져다 주는 가장 큰 지혜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우리는 헛소리를 사랑하고 헛소리에 취약한 동물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헛소리를 하고 헛소리들에 귀가 솔깃하겠지만, 나의 이러한 취약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아주 큰 간격이 존재한다. 적어도 나는 나의 작은 경험과 느낌 따위를 근거로 어떤 주장이 진리임을 미는 행동은 많이 자제하게 되었다.
내가 틀렸음을 알 때 비로소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틀리는 일이 많은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니까. 반대로 자신은 절대 틀리는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성장할 가능성은 그닥 높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면 단기적으로는 기분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성장이 없고 정체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삶의 시간은 유한하다. 늦게 깨닫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내가 자주 하는 헛소리들과 잘못된 믿음들이 깨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Littrell S, Risko EF, Fugelsang JA. ‘You can’t bullshit a bullshitter’(or can you?): Bullshitting frequency predicts receptivity tovarious types of misleading information. British Journal of SocialPsychology 202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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